1428년(世宗 10年 戊申) 4월 18일 출생하시어 1450년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제수하셨으며, 수계(壽階: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내리는 벼슬)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셨다. 父 참의공 기문(6世))이 아우 절민공과 그리고 그의 아들 교관공 철산과 더불어 成三問 부자와 함께 端宗 복위를 꾀하다 참형을 당한뒤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주암에 낙향하셨다. 낙향(落鄕)하여 겸천(謙川) 위에다 작은 정자 하나를 지어 세 동생과 함께 우애(友愛)를 돈독히 하면서 큰 이불을 덮고 긴 베개를 베면서 아침 저녁으로 화기애애(和氣靄靄)하게 지내셨다.『시경(詩經)』 사간장(斯干章)에 나오는 「형과 아우가 서로 사이 좋게 지내누나[兄及弟矣 式相好]」의 뜻을 취하여 그 정자를 상호정(相好亭)이라 이름하였다. 이 정자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도 불타지 않고 지금까지 우뚝 솟아 있는데 매년 음력 九月十六日에 네 형제의 후손들이 일제히 이 정자에 모여 돈목(敦睦)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사촌(沙村) 장경세(張經世) 판서(判書) 홍낙명(洪樂命)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등이 지은 중수기(重修記)가 있다. 公은 1498년 7월 8일에 71세로 卒하셨고 墓할아버지의 묘와 같은 언덕 을좌(乙坐)인데 비석이 있다. 공과 부인, 그리고 장녀 소주(昭主)의 영정(影禎)이 전해와 무오년에 후손이 새로 영당(影堂)을 월곡(月谷)에 지어 손질하여 모셨다.配정부인(貞夫人) 豊山沈氏(풍산심씨) 十二月十六日卒 墓위 아래로 비석이 있다. 父풍산군(豊山君) 심치(沈?絶?) 祖정혜공(靖惠公) 심귀령(沈龜齡) 曾祖판사(判事) 심승경(沈承慶) 外祖현령(縣令) 죽산(竹山) 박화(朴華)